[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5화
[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5화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0-07-31 16:45
  • 승인 2020.07.31 16:47
  • 호수 1370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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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과 공동 협력하여 5백 메가와트급 핵융합 발전 실험로 ITER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핵융합 실험로죠. 핵융합 에너지의 실용화가 거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참여했다면 각국의 지분이 있을 텐데?”
“한국의 지분은 9퍼센트입니다.”
정세찬의 질문을 금세 알아듣고 성민이 대답했다.
“언제 완성됩니까?”

“2050년쯤 완성될 것으로 보고 있지요.”
“어이구, 내가 환갑도 훨씬 넘긴 뒤네.”
정세찬이 손으로 이마를 쳤다.
“하지만, 공동 프로젝트라는 게 좀... 위험한 거 아닌가요?”
“위험하다니요?”

유미의 물음을 못 알아들은 성민이 되물었다.
“다들 자국 이익에 혈안이 돼 있을 텐데, 누군가 딴맘 먹으면 공동 개발이니 국제 협력이니 하는 게 다 무산되는 것 아닐까요?”
“딴맘?”

“예. 만약 그 거대한 프로젝트의 핵심 요원 한 둘이 핵심 기술을 빼돌려서 거액에 팔아먹을 수도 있잖아요.”

“설마 그럴 리가... 과학의 세계는 순수한 거야. 내 손으로 꿈의 물질을 현실화시킨다, 과학자에게 그 이상의 보상이 어디 있겠어?”

잠자코 설명을 듣고 있던 수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런, 퀴리부인! 원자력 발전을 순수 과학으로 보고 계신가 보네요?”
유미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원자력은 과학이 아니라 경제야. 돈 때문에 개발하는 거야. 이제 세계는 돈이 움직이고 있다고. 알겠어?”

수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돈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지요. 핵이 세상을 잡아먹고 있어. 인간의 영혼까지 파먹고 있다고.”

정세찬이 심하게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뜻 모를 말을 했다.
“맞아요. 핵도 돈도 없는 순수한 세상에서 살고 싶어.”
유미의 눈도 풀어져 게슴츠레해졌다.

“자자, 열두 시가 다 됐으니 오늘은 일어나지요.”
성민이 술자리를 수습했다.
“제가 호텔에 방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성민의 제안대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용은 모두 성민이 부담했다.
정세찬과 고유미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럼 난 집으로...”

“먼저 올라가세요.”
수원이 인사하며 돌아서자 성민이 엘리베이터에서 도로 내렸다.
“잠깐, 내가 데려다 줄게.
성민이 수원의 팔을 잡았다.

“술 마셨잖아요.”
“대리 운전 부르면 돼.”
호텔 직원이 전화를 걸자 대리 운전사가 금세 나타났다.
두 사람은 수원의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언제 올라가요?”
한참 만에 수원이 입을 열었다.
“내일 오후. 김해 비행장보다 울산이 가까운 것 아닌가?”
성민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유미네와 함께 가나요?”
“KTX 표를 미리 사가지고 왔대. 내일 오후 세 시 열차래.”
어느새 차가 수원의 오피스텔 앞에 닿았다.
“사는 모습 좀 봐도 될까?”

성민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열두 시가 훨씬 넘었다.
수원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성민은 수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 사이에 뭐 어때.”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수원의 오피스텔로 들어섰다. 비교적 넓은 거실과 침실 1개, 작은 창고, 주방, 욕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주 실용적인 분위기였다. 거실에는 작업용 컴퓨터 책상과 작은 다갈색 소파, 24인치 TV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수원이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가지고 다니던 커다란 테디 베어 곰 인형이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세 칸밖에 없는 책장에는 책이 빼곡 꽂혀 있었다. 대부분이 불어와 영어로 된 물리학 전공 서적과 학회 연구논문집이었다.
“부모님 사진?”

성민이 컴퓨터 책상에 놓인 빛바랜 액자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파리로 떠나기 전날 찍었다는 바로 그 사진이었다.
“네.”

“아버지 눈매가 예리하시군.”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미국에서 만나던 시절 수원은 집안 내력과 자신이 태어난 과정을 성민에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아버지 죽음의 미스터리를 캔다더니 진척은 좀 있어?”
“그동안은 별 단서가 없어 포기하려 했었는데, 요즘 갑자기 많은 정보가 입수되고 있어요. 진실에 거의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 말하려고 하던 성민이 입을 도로 다물었다. 그러고는 소파에 몸을 푹 파묻으며 앉았다.

“야, 좋다. 한수원의 향내가 물씬 나는 집이야.”
“대접할 게 커피밖에 없는데.”
“커피, 좋아.”

수원은 커피를 타러 부엌으로 갔다. 커피를 타면서 등 뒤 성민의 시선이 뜨겁게 느껴졌다.

“이곳 생활은 할 만해?”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으며 성민이 물었다.
“보람 있어요. 사람들도 좋고. 다만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프죠.”

“한국 일 끝나면 미국에 다시 가야지?”
“글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머니가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시거든요.”
“여생을 한국에서? 한국은 위험한 곳이야.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게 좋은 판국에 뭣 하러 귀국을.”

“그래도 우리 조국이잖아요.”
“조국? 할아버지의 나라?”
성민은 코웃음을 쳤다. 성민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냉소를 지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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