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6화
[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6화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0-08-07 16:07
  • 승인 2020.08.07 16:11
  • 호수 1371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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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험한 나라에 성민 씨는 왜 온 거예요?”
수원이 힐책조로 물었다. 둘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 그거야 수원이 남 모르게 무슨 일을 하는가 알아보려고.”
“남 모르게? 내가 남 모르게 무슨 일을 한다고요?”

“하하하. 농담. 나 모르게 다른 남자와 결혼할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서.  주영준인가 하는 사람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싱겁긴...”
수원은 눈을 흘겨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성민이 슬그머니 곁으로 와서 수원의 어깨를 감쌌다.
“미안해.”

“뭐가요?”
수원이 몸을 약간 빼자 성민은 팔에 더욱 힘을 주어 감싸 안았다.
“그냥 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성민은 수원을 가슴에 안았다.

“네가 연락을 끊은 뒤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네 연락이 다시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어.”
연락을 기다렸다는 성민의 말에 수원은 가슴이 싸해져 왔다.
“우리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그냥 친구처럼....”
수원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성민의 입술이 수원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익숙했던 성민의 체취가 취기 어린 수원의 몸을 일깨웠다. 얼굴이 달아 오르고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수원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에 성민이 한 말이 생각났다.
‘한국이 위험한 나라이니 얼른 떠나라고?’
다시 시작하기엔 둘의 가치관이 너무도 달랐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생도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 됐어요.”

수원은 두 손으로 성민의 가슴을 밀어냈다. 수원의 표정에서 단호함을 읽은 성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케이. 나는 다시 호텔로 갈게. 내일 봐.”
성민은 인사를 하면서 수원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문이 닫히자 갑자기 정적과 함께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잠시 서성이던 수원은  창문에 다가서서 밖을 내려다보았다. 성민이 오피스텔을 막 나서고 있었다.
성민은 바로 택시를 부르지 않고 가로등 밑에 서 있었다.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얼마 후 성민은 멀리서 달려오는 택시를 손으로 불렀다. 성민이 탄 택시가 출발하자, 오피스텔 앞 도로에 주차해 있던 검은 자동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택시가 좌회전 지시등을 켜자 검은 자동차도 급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9. 폭발 직전 청와대 대결

“굿모닝.”
딱딱한 빵 한 개, 베이컨 한 조각과 버터, 우유 한 잔. 수원이 아침 식사를 끝낼 무렵 성민이 전화를 걸어왔다.
“식사 안 했으면 이쪽으로 나올래? 파라다이스 호텔 양식당. 정세찬 씨와 고유미 씨도 함께 있어.”

어제 일은 다 잊어버렸다는 듯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먹고 있는 거랑 메뉴가 비슷할 텐데요?”
“그럼 커피라도 함께하게 나오시지.”
수원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차를 몰아 호텔로 갔다. 채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배 박사님도?”
“안녕히 주무셨을 리가 있겠어? 한밤중에 거리로 쫓겨났는데. 그 여자 인심 한번 사납더군.”

수원의 말에 성민이 은근슬쩍 받아쳤다.
“어머, 배 박사님을 내칠 정도로 대단한 여자가 누굴까.”
유미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수원은 잠자코 커피만 마셨다.
“오후 3시 KTX로 가신다고요?”

“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부산 시내 구경하실래요? 태종대가 멋있는데.”
“태종대 구경보다 두 학자님과 핵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미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핵 문제와 관련된 정치학 강연을 좀 해볼까요?”
“에이, 또 공부?”

유미가 투정을 부리면서도 정세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나라 역대 지도자 중에 핵에 가장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었지요. 박정희는 김일성이 핵무기 보유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남한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을 몰랐지요. 하지만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은 펼쳐줄 수 있지만 한국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어요.”

“강대국의 논리로군요. 자기들은 이미 가졌으면서 다른 나라는 안 된다는 건.”
성민이 거들었다.
“그렇죠. 하여튼 70년대 들어 미국은 민주당 카터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에 대한 정책이 바뀌었지요. 미군 철수를 내세우며 한국의 국방비 증액, 인권탄압 중지, 긴급조치 해제 등을 요구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를 압박한 거지요. 거기에 대고 박정희가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 테니 원료와 기술을 대라고 했으니 먹힐 리가 있겠습니까?”

“비용을 내고 살 수도 있는 것 아니었나요?” 수원이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겉으로는 우방이었지만 속으로는 독재나 일삼는 골치 아픈 국가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요?”

수원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음 말을 재촉했다.
“카터 집권 3년이 되는 1979년 7월, 카터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한국 방문길에 올랐지요. 김포공항에 마중 나갔던 박정희는 안개로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두 시간이나 지루하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런데 카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정희와 악수만 나눈 뒤 정해 준 숙소를 마다하고 용산 주한미군 영내로 숙소를 정하고 가버렸지요.”
“어머나.”

유미가 작게 혀를 찼다.
“이튿날 청와대에서 열린 회담은 마침내 폭발 직전까지 갔습니다. 박정희가 작심하고 일방적인 설득을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준비해 간 메모를 책상 위에 펴놓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려 가면서 무려 40분간이나 카터에게 훈계를 했지요.”

“무슨 이야기를 한 건가요?” 수원이 물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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