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7화
[연재-추리소설] 이상우 작가의 신의 불꽃 27화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0-08-14 09:29
  • 승인 2020.08.14 09:31
  • 호수 1372
  • 2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회사는 왜 성민 씨를 파견한 거예요?”
“직원 중에 마땅한 한국인이 없었으니까. 나를 미끼로 해서 한국의 핵융합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엿보는 거겠지. 부사장이 처음 그 제의를 해왔을 때 무릎을 탁 쳤어.”

“왜요?”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잖아. 네가 한국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성민은 수원의 눈을 그윽한 눈길로 응시했다. 
“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수원이 시선을 피하자 성민의 말투가 심드렁하게 바뀌었다. 
“다른 건 뭔데요?”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잖아. 위험 국가에 근무하는 만큼 위험수당을 더 얹어 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연봉 제의를 했는데 그대로 받아들여 주더군.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세게 부르는 건데.”

수원은 이해타산을 꼬박꼬박 챙기는 성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 몫을 챙기는 게 꼭 부도덕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애써 이해하려고 해 보았으나, 묘한 거리감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수원과 성민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태종대 산책길을 걸었다. 
“저것 먹어 볼까요?”
수원이 길에서 파는 빈대떡을 가리켰다. 주름이 잔뜩 진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손님을 맞고 있었다. 성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두 사람은 성민이 원하는 대로 태종대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원은 울산 공항까지 성민을 데려다주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어? 왜 이러지?”
오피스텔 번호키를 누르던 수원은 당황했다. 번호를 아무리 맞춰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원은 번호를 잘못 눌렀다고 생각하고 다시 또박또박 눌러 보았다. 그러나 여전했다. 갑자기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수원은 열쇠 기술자를 불렀다. 

“고장인가요?”
“자물쇠 칩이 완전히 망가졌네요.”
“어제만 해도 멀쩡했는데...”
“강력한 전류나 자석을 갖다 대면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자물쇠 칩이 망가져 버려요.”

“네? 저는 자석 같은 거 댄 일이 없는데요.”
“그래요? 거 참 이상하네. 그럼 누가 일부러 그랬나?”
“네?”
“도둑이 가끔 그런 방법을 쓰거든요.”
“그럼 누가 침입했다는 건가요?”

“침입은 못했을 겁니다. 이 문은 열 수 없었을 거예요. 자물쇠 칩이 망가지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 있긴 한데 이건 최신형이에요. 망가지기만 하지 열리진 않아요.”
“시도만 했다가 실패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요. 만약 그렇게 해서 열렸으면 지금도 문이 열려 있겠지요.”
수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은 기술자가 돌아가자마자 집에 들어가 보조키까지 꼭 잠갔다. 그리고 방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왠지 단순 도둑의 침입 시도가 아닌 것 같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수원은 컴퓨터를 켜 보았다. 역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패스워드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로그 파일을 살펴보았지만 자신이 없는 동안 컴퓨터를 작동시킨 기록도 없었다. 

수원은 모든 게 정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메일 수신을 알리는 아이콘이 컴퓨터 바탕 화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수원은 메일함을 열었다. 메일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수원은 며칠 전 일본인 탑승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준 마리아 바소로뮈가 보낸 메일을 먼저 읽었다. 

- onesil 봉주르.
일본인 탑승객에 대한 정보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것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자료를 제공해 드립니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강제 착륙 당한 무르만스크는 오래전부터 소련의 중요한 군사기지였습니다. ‘무르만’ 이라는 말은 사미어 언어로 ‘지구의 가장자리’라는 뜻이랍니다. 그 지구의 가장 자리가 1백 년 전부터 유럽의 중요 군사기지로 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1915년에는 소련, 영국, 프랑스, 미국 군이 함께 주둔한 적도 있답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첩보원들이 많이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대한항공 여객기에 미사일을 쏘고 강제 착륙시킨 수호이 15의 조종사 두 명 중 한 명인 아나톨리 케레포프는 그 사건 후에 대령으로 승진하고 아나톨리 비행학교 교관을 지냈습니다. 이후 많은 아나톨리 2세를 길러냈지요. 

그중에 저공비행, 미국의 911 테러에 때 볼 수 있었던 대담한 돌격 비행의 기술을 익힌 조종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911 테러의 주범이 아나톨리 학교 출신자와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각국에 은밀하게 존재하는 테러 조직 사이에서 아나톨리라는 이름이 신화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과 관련된 폭력 조직이 많더군요.

수원은 또 다른 메일을 읽어 보았다.
- onesil님 안녕하세요.
저는 20여 년 전까지 프랑스 해외안전국, 즉 DGSE의 오스트리아 빈 사무실에 근무하던 사람입니다. 지금 IAEA가 있는 바그너거리에 있었지요.

1978년 대한항공 여객기 강제 착륙 사건 때 DGSE끼리 많은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그 중 기억나는 게 있어서 30여 년간 보관해 온 일기장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에 onesil님에게 참고될 만한 것이 있어 알려 드립니다.

당시 대한항공 902편은 아주 중요한 것을 싣고 있었다고 합니다. 파리에서 서울로 가는 물건인데, 내용물은 아무도 모르고요. 비밀보고서를 포함한 서류라는 이야기도 있고, 비밀 통신 장비라는 설도 있었습니다. 소련이 비행기를 격추시키지 않고 강제 착륙시킨 것은 그 비밀 문건을 가져가려고 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이, 몇 년 후인 1983년 소련은 뉴욕에서 오는 대한항공 007 여객기가 북 태평양에서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미그 23 전투기 3대를 출동시켜 무참히 격추시켰거든요. 착륙 유도 같은 것 없이 말입니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