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 세상을 지배하던 페이스북은 2인자인 셰릴 샌드버그가 가정사의 비극을 겪고 경영에서 멀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열 아홉 나이에 창업한 페이스북은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거대한 소셜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은 마크 저커버그가 했지만, 지금의 페이스북으로 성장시킨 사람은 셰릴 샌드버그였다.

저커버그는 자신과 샌드버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는 큰 조직을 경영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분석적이고 전략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저커버그는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은 드물고, 스스로를 후자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다. 샌드버그는 전자에 속한 탁월한 2인자였다.

샌드버그는 저커버그의 제안으로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가 된 이후에 경영에 관한 모든 일을 총괄했다. 저커버그는 제품과 엔지니어링을 맡고 나머지 모두를 샌드버그가 담당했다. 세일즈, 인사관리, 커뮤니케이션, 법무관련 업무 등 상품을 제외한 모든 부문을 이끌어 가며 남편을 잃는 사고를 겪을 때까지 창업자인 저커버그와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샌드버그는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옮겨 온 뒤에 광고를 페이스북의 수익모델로 만들었다. 능력있는 인물들을 페이스북으로 데려오고, 구멍가게 같았던 페이스북에 고유의 조직문화를 만들었다.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을 전혀 다른 기업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과정에서 지킨 철칙이 있다. 샌드버그는 자신보다 15세 어린 창업자 저커버그를 항상 깍듯하게 대했다.

샌드버그가 15살 어린 저커버그의 누나같은 경영 파트너역할에 충실했다면, 중국공산당의 저우언라이는 한 때 자신보다 서열이 낮았던 마오쩌둥에게서 지도자의 자질을 발견하고 권력 장악을 적극 지원하며 평생 2인자의 길을 자청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을 한껏 낮췄기에 저우언라이는 중국 현대사에서 실각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역사 속에서 2인자들은 하나같이 심한 부침을 겪었다. 권력을 잃기도 하고 때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도전처럼 왕권 위에 선 재상이 되려다 목숨을 내놓기도 하고, 김종필처럼 한 때의 2인자가 절대권력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내쳐지고 은둔의 시간을 보내다 한 때의 정치적 경쟁자2인자로 부활하는 경우도 있었다.

2인자를 마음에서 용납하는 1인자는 드물다. 2인자는 1인자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행사한 권력의 결과가 1인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1인자가 2인자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순간이 2인자에게는 위기의 순간이다. 권력주변의 부나방들은 그런 낌새를 놓치지 않으며, 모든 권력의 쟁투는 아주 미세한 엇갈림에서 시작된다. 2인자의 역설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모두가 인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2인자다. 윤 정부에서 한 장관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대선주자 지지도 2위의 유력한 차기 주자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장관이 2인자의 역설마저 피해갈 수 있을까. 한 장관이 실질적인 1인자로 비춰지거나, 1인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시점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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